일본 레트로 하드웨어를 보다 보면 X68000은 늘 사진으로 먼저 만난다. 세로로 선 쌍둥이 타워에 위쪽 손잡이가 달린 실루엣은 한 번 보면 잊기 어렵다. 국내에는 정발된 적이 없어 실물을 만질 기회가 드물었고, 그래서 더 궁금해지는 기종이다.

X68000은 샤프가 1987년에 내놓은 68000 기반 개인용 컴퓨터다. 사무기가 아니라 그래픽과 사운드를 앞세운 홈 워크스테이션을 지향했고, 당시 가정용 기기로는 드물게 하드웨어 스프라이트와 FM 음원을 넉넉히 실었다. 오락실 게임 이식의 표준 플랫폼으로 이름을 남겼고, 지금은 px68k나 MAME 같은 에뮬레이터로 어렵지 않게 부팅해 볼 수 있다.
어떤 기계이고 언제 나왔나
초대 모델은 1987년 3월에 나온 CZ-600C 계열이다. 검은색 세로형 트윈 타워 케이스에 5.25인치 플로피 드라이브 두 대를 세로로 배치했고, 위쪽에 운반용 손잡이 겸 통풍구가 있다. 이 케이스는 샤프가 설계한 것으로, 특정 외부 업체가 디자인에 참여했다는 확실한 기록은 없다.
기획 의도는 분명했다. 당시 인기였던 아케이드 게임을 집에서 거의 그대로 돌리는 것이다. 그래서 배경 스크롤과 스프라이트를 하드웨어로 처리하고, 야마하 FM 음원을 기본 탑재했다. 개발기 성격도 강해서 일부 게임 회사가 아케이드 타이틀 제작에 X68000을 실제로 썼다.
주요 사양
아래는 초대 모델 CZ-600C 계열 기준이다. 이후 X68000 XVI, X68000 Compact를 거쳐 1993년 X68030까지 계열이 이어지며 CPU와 메모리가 올라갔다.
| 항목 | 내용 (CZ-600C, 1987) |
|---|---|
| 제조사 | 샤프 (Sharp) |
| 발표 | 1987년 3월 |
| CPU | 히타치 HD68HC000 (모토로라 68000 호환), 10 MHz |
| 메모리 | 1 MB (최대 12 MB까지 확장) |
| 그래픽 칩셋 | VINAS, VSOP, CYNTHIA 등 전용 게이트 어레이 |
| VRAM | 총 1056 KB (그래픽 512 KB, 텍스트 512 KB, 스프라이트 32 KB) |
| 사운드 | 야마하 YM2151 (FM 8채널), OKI MSM6258 (ADPCM 1채널) |
| OS | Human68k v1.0 |
| 저장장치 | 5.25인치 플로피 2드라이브 (초대 모델은 HDD 미탑재) |
| 판매 지역 | 일본 내수 전용 |
화면 쪽은 오해가 잦은 대목이라 따로 정리한다. 그래픽 VRAM 안에서 스크롤을 위해 쓰는 좌표 평면은 최대 1024x1024 크기지만, 이건 화면에 한꺼번에 뿌리는 해상도가 아니라 스크롤용 그래픽 좌표면의 크기다. 실제 표시 해상도는 모드에 따라 다르고, 고해상도 모드에서 대략 768x512 수준까지 낸다. 여기에 별도의 텍스트 화면과 스프라이트 화면을 겹쳐 합성한다.
Human68k와 SX-Window
Human68k는 X68000의 기본 OS다. MS-DOS와 사용감이 비슷해서 실행 파일 확장자가 .X이고 명령행 구조도 낯설지 않다. 후기 모델에는 SX-Window라는 GUI 환경이 얹혔는데, 이건 Human68k 위에서 도는 창 기반 데스크톱이다. 맥의 파인더나 아미가의 Workbench를 떠올리면 위치가 잡힌다.
같은 시대 경쟁작과 비교
1987년 시점에서 X68000의 위치는 애매하면서도 독특하다. 국민기라 불린 NEC PC-8801/PC-9801은 사무와 소프트웨어 물량에서 앞섰지만 게임 그래픽 성능은 X68000이 우위였다. 서양 쪽 68000 진영인 아미가 500이나 아타리 ST와 비교하면, X68000은 하드웨어 스프라이트와 FM 음원을 더 게임기처럼 몰아붙인 설계다.
대신 값이 비쌌다. 초대 모델은 일본 내수 전용 고급기였고, 아미가나 ST가 노린 대중 보급형 가격대와는 애초에 다른 시장이었다. 이 가격 부담이 보급 대수를 제한한 요인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 봐도 재미있는 설계
가장 눈에 띄는 건 아케이드를 겨냥한 그래픽 하드웨어다. 스프라이트와 다중 스크롤 배경을 CPU 부담 없이 하드웨어로 합성하니, 68000 10 MHz라는 소박한 클럭으로도 화면이 부드럽게 움직인다. 그라디우스 같은 아케이드 이식이 거의 본판 수준으로 나온 배경이다.
사운드도 시대를 앞서갔다. YM2151 FM 음원 8채널에 ADPCM 샘플 채널을 더해, 게임 배경음악과 효과음을 동시에 다룰 수 있었다. 지금 들어도 X68000판 게임 음악은 팬층이 두껍다.
수집가 관점
실물 확보는 쉽지 않다. 내수 전용이라 절대 물량이 적고, 상태 좋은 개체는 일본 경매에서도 값이 나간다. 전압도 100V 기준이라 국내에서 쓰려면 변압기가 필요하다.
고장은 세월값을 한다. 전해 콘덴서 누액이 잘 알려진 대표 증상이라, 오래 보관된 개체는 전원부와 기판 콘덴서 상태를 먼저 봐야 한다. 5.25인치 플로피 드라이브의 벨트 경화나 그리스 굳음도 흔한 편이라, 실기를 살리려면 리캡과 드라이브 정비를 각오하는 게 현실적이다.
px68k로 오늘 부팅하기
실기가 없어도 에뮬레이터로 감을 잡을 수 있다. 가장 접근하기 쉬운 건 px68k이고, RetroArch에서는 px68k 코어로 돌린다. 멀티 에뮬레이터인 MAME도 X68000을 지원한다.
공통으로 필요한 건 BIOS 파일 두 개다. IPL ROM과 CG(폰트) ROM이며, px68k 계열은 이 파일들을 keropi 폴더에 넣도록 정해져 있다.
iplrom.dat- 부팅 IPL ROM (모델에 따라iplrom30.dat,iplromco.dat,iplromxv.dat대체본)cgrom.dat- 문자 폰트 ROM (cgrom.tmp형태도 있음)
RetroArch 기준 절차는 다음과 같다.
- 온라인 업데이터에서
Sharp - X68000 (PX68k)코어를 설치한다. - RetroArch의
system(BIOS) 폴더 안에keropi폴더를 만들고iplrom.dat와cgrom.dat를 넣는다. - 디스크 이미지(
.dim,.d88,.hdf등)를 코어로 연다. - 첫 부팅 후
keropi폴더에config파일이 생기면,StartDir항목에 ROM/디스크 폴더 경로를 적어 코어 메뉴에서 바로 접근하게 한다. - 게임 중 코어 메뉴는
F12로 연다.
여러 장짜리 게임은 디스크 교체가 필요하다. RetroArch의 디스크 컨트롤(Disc Control) 메뉴에서 이미지를 교체하면 되고, MAME는 프론트엔드나 실행 옵션에서 드라이브별 이미지를 지정한다. BIOS와 게임 이미지의 합법적 확보는 각자 책임이다.
더 파볼 자료
사양과 계열 변천은 위키백과 X68000 항목이 정리가 깔끔하다. 에뮬레이터별 설정과 BIOS 파일 요건은 Emulation General Wiki와 libretro px68k 문서를 함께 보면 빠르다. 옛 소프트웨어와 잡지 스캔은 archive.org에서 X68000으로 검색하면 상당량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