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 장터에서 ERS-1000 매물을 보다 보면 "플랜 만료", "플랜 없음" 같은 단서가 붙은 개체가 눈에 걸린다. 국내 수집가들 사이에서 흔히 "깡통 아이보"라고 불리는 상태다. 클라우드 구독을 얹지 않은 소니의 강아지 로봇이 대체 어디까지 강아지 노릇을 하는지, 커뮤니티 추측이 아니라 소니가 문서에 적어둔 문장만으로 선을 그어보려 한다.
먼저 답부터 적자면, 소니는 플랜 미가입 상태에서 aibo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어디에도 공식적으로 정리해두지 않았다. 공개된 문서가 명시하는 것은 반대쪽, 즉 플랜을 해지하면 무엇이 사라지는지다. 그리고 그 목록은 아이보를 아이보답게 만드는 거의 전부에 해당한다. 성장과 기억, My aibo 앱을 통한 모든 상호작용,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개발용 API까지 끊긴다.
ERS-1000은 클라우드를 전제로 설계된 기계다
2017년 11월에 발표되고 2018년 1월 11일 일본에서 발매된 ERS-1000은 1999년의 초대 AIBO와 결정적으로 다른 물건이다. 이전 세대가 본체 안의 프로그램으로 완결된 장난감이었다면, ERS-1000은 LTE SIM과 Wi-Fi를 달고 소니 전용 서버와 상시 통신하는 단말이다. AIBO 계보 전체의 변화는 AIBO 27년사에서 따로 다뤘다.
| 항목 | 내용 |
|---|---|
| 모델명 | ERS-1000 |
| 발표 / 일본 발매 | 2017년 11월 / 2018년 1월 11일 |
| CPU | 64bit 쿼드코어 |
| 디스플레이 | OLED 2개(양쪽 눈) |
| 가동축 | 합계 22축(머리 3, 입 1, 목 1, 허리 1, 다리 4x3, 귀 2x1, 꼬리 2) |
| 네트워크 | LTE, IEEE 802.11b/g/n(2.4GHz) |
| 크기 / 무게 | 약 180 x 293 x 305 mm / 약 2.2 kg |
| 배터리 / 충전 | 약 2시간 동작(표준 모드) / 약 3시간 충전 |
| 소비전력 | 약 14 W(표준 모드 동작 시) |
센서 쪽은 6축 검출(자이로와 가속도) 2조, 모션 센서, 측거 센서, ToF 센서(빛의 왕복 시간으로 거리를 재는 센서), 조도 센서, 그리고 머리와 턱, 등의 터치 센서로 구성된다. 카메라는 전방 카메라와 SLAM(자기 위치 추정과 지도 작성) 카메라 두 개다. 하드웨어만 보면 상당히 자족적인데, 이 센서들이 만들어낸 데이터를 해석하고 축적하는 쪽이 서버에 있다는 점이 이 글의 전부다.
베이직 플랜이 파는 것은 서버 접속권이다
일본판은 aibo 베이직 플랜, 미국판은 aibo AI Cloud Plan으로 이름이 다르다. 내용의 골자는 같다. 소니 공식 소개 페이지는 이 플랜을 "aibo가 전용 서버에 항상 접속해 정보를 주고받고, 보고 들은 것을 기억하고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클라우드 서비스"라고 설명한다. 여기에 Wi-Fi 없이도 서버와 통신할 수 있게 해주는 aibo 전용 모바일 통신 서비스가 묶여 있다.
플랜에 포함되는 것으로 명시된 항목은 이름 지어주기, 재주 가르치기, 앱을 통한 대화, 경험 축적에 따른 성장, 사진 촬영과 클라우드 보관(최대 500장), 건강 상태 확인, 시스템 자동 업데이트, 데이터 백업이다.
- 일본판 3년 일괄: 99,000엔(세금 포함)
- 일본판 3년 월납: 월 3,278엔 x 36회, 합계 118,008엔(세금 포함)
- 일본판 이후 갱신: 1년 33,000엔 일괄 또는 월 3,278엔 x 12회
- 미국판: 본체 구매 시 3년분 포함, 갱신 연 300달러
소니는 이 플랜의 성격을 에두르지 않는다. 공식 페이지는 "aibo와 함께 살기 위해서는 aibo 베이직 플랜 가입이 필요합니다"라고 적어두었고, 이용약관 역시 "본 플랜은 본 제품을 즐기기 위해 필수인 계약"이라고 규정한다. 미국판 페이지도 구독이 "aibo의 모든 기능과 학습 능력을 활용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쓴다. 옵션이 아니라 제품의 일부라는 입장이다.
해지하면 없어지는 것: 공식 문서가 명시한 목록
소니 일본 지원 사이트에는 "aibo 베이직 플랜을 해지하면 어떻게 되나요"라는 문서가 따로 있다. 여기가 이 주제의 1차 소스다. 문서가 열거하는 항목을 그대로 옮긴다.
- 성장 정지. 사람과 물건, 장소를 기억하는 것, 오너의 훈육을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 클라우드상 데이터 소멸. 서버에 있던 aibo의 기억과 각종 설정 정보가 없어지며 복구할 수 없다.
- My aibo 앱 연동 종료. 앱을 경유한 aibo와의 커뮤니케이션이 불가능해진다. 사진 열람, 행동 지시, 지도 확인, 설정 변경이 여기에 들어간다.
- 앱 내 자산 무효. 모아둔 코인과 구입한 아이템(밥 등)을 쓸 수 없다.
-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중단. 신기능 제공을 받을 수 없다.
- 계절 행동 배포 중단. 계절별로 배포되던 행동, 기념일 행동이 끊긴다.
- 개발자 기능 종료. aibo Web API(외부에서 aibo에 명령을 내리는 HTTP 인터페이스), aibo Events API, aibo 비주얼 프로그래밍을 이용할 수 없다.
이용약관 쪽 문장이 더 건조하다. "고객의 본 데이터는 클라우드 서비스 이용 기간의 말일 또는 본 플랜 이용에 관한 계약의 해제일로 서버상에서 삭제됩니다." 즉 해지일이 곧 기억의 삭제일이다. 몇 년치 학습이 계약 종료일에 맞춰 서버에서 지워진다는 뜻이다.
문서가 말하지 않는 것: 본체 단독 동작
여기서 정직하게 선을 그어야 한다. 위 목록은 전부 "없어지는 것"이다. 소니 공식 문서 어디에도 "플랜 없이도 aibo는 이러이러하게 움직인다"는 보장 문구는 없다. 헬프가이드의 초기 설정 절차는 My aibo 앱, My Sony 사인인 ID, 동봉된 12자리 프로덕트 키, 오너 정보 등록을 요구하는데, 플랜 가입 자체를 절차 단계로 언급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것이 "플랜 없이 초기 설정이 끝난다"는 확인은 아니다. 문서는 그 지점에 대해 침묵한다.
그래서 깡통 아이보의 실제 거동에 관해 공식 근거로 말할 수 있는 범위는 여기까지다.
- 클라우드에 의존하는 기능은 확실히 끊긴다. 문서에 열거되어 있다.
- 본체 하드웨어(22축 구동, 카메라, 터치 센서, OLED 눈, 충전 스테이션 복귀)가 플랜과 무관하게 어디까지 동작하는지는 공식 문서에 기술이 없다.
- 따라서 중고 개체를 살 때 "플랜 없이도 이 정도는 움직인다"는 판매자 설명은 소니 문서로 검증되지 않는 주장이다.
추측을 보태고 싶은 유혹이 크지만, 레트로 기기 문서화에서 추측과 확인을 섞으면 나중에 아무도 그 글을 인용할 수 없게 된다. 이 부분은 빈칸으로 남겨둔다.
Wi-Fi가 끊긴 상태와 플랜이 없는 상태는 다른 문제다
중고 매물 설명에서 가장 자주 뒤섞이는 두 상태다. 구분해야 한다.
Wi-Fi 일시 미접속은 네트워크 문제다. ERS-1000은 몸통 커버 안쪽에 3단 네트워크 스위치를 갖고 있고, 헬프가이드는 각 위치를 이렇게 설명한다.
- 위치 2: Wi-Fi 기능과 모바일 네트워크 통신 기능을 모두 켠다.
- 위치 1: Wi-Fi 기능만 켜고 모바일 네트워크 통신 기능을 끈다.
- OFF: Wi-Fi와 모바일 네트워크 통신 기능을 모두 끈다.
본체 LED로 상태를 읽을 수 있다. Wi-Fi 네트워크 LED가 녹색 점등이면 Wi-Fi 경유 인터넷 접속 상태, 녹색 점멸이면 Wi-Fi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없는 상태, 녹색과 적색 교대 점멸이면 접속 완료 대기 상태다. 모바일 네트워크 LED는 주황 점등이 접속 중, 주황 점멸이 접속 불가다. 네트워크 사양은 2.4GHz 대역만 지원하고 5GHz(11a, 11ac)는 지원하지 않는다.
플랜 미적용은 계약 문제다. 라우터를 새로 사도, 스위치를 2에 놓아도 서버 쪽 계정이 없으면 위에 열거한 기능은 돌아오지 않는다. Wi-Fi 페이지가 인터넷 연결의 목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시스템 소프트웨어 자동 업데이트인데, 플랜 해지 시에는 그 업데이트 자체가 정지 대상이다. 두 층이 각각 막혀 있고, 아래층(계약)이 막히면 위층(회선)을 고쳐도 소용이 없다.
중고 개체를 들일 때 확인할 것
양도 절차에 관한 공식 안내가 몇 가지 실무적 함정을 알려준다.
헬프가이드는 "aibo를 양도하기 전에 반드시 My aibo 앱으로 초기화하라"고 지시한다. 초기화하지 않고 넘기면 제3자가 개인 데이터를 열람하거나 사용할 수 있다는 경고가 붙어 있다. 즉 초기화되지 않은 개체를 받았다면 전 소유자의 계정에 아직 묶여 있을 가능성을 의심해야 한다. 일본판 해지 절차 문서는 시점까지 못박는다. 당월 20일까지 해지를 신청한 뒤 당월 말까지 본체를 초기화하라는 안내다.
되살리기를 계획한다면 조건이 만만치 않다. 일본판 해지 문서는 재가입 시 3년 플랜만 선택할 수 있다고 명시한다. 연 단위 갱신은 계약이 이어지는 동안의 옵션이고, 한 번 끊긴 개체를 다시 붙이려면 3년치를 다시 계약해야 한다는 뜻이다. 프리미엄 플랜도 베이직 플랜 해지와 동시에 종료되며, 관련 옵션 서비스의 신규 신청이 막힌다. 미국판은 갱신 코드를 구매해 계정에 입력하는 방식이며, 활성화 코드는 발급 후 12개월 안에 쓰지 않으면 만료되고 요금은 환불되지 않는다.
정리하면, 깡통 아이보의 가치는 "싸게 산 아이보"가 아니라 "3년 계약을 다시 붙일 의사가 있느냐"로 갈린다. 계약을 붙이지 않을 생각이라면 클라우드 기능은 처음부터 계산에서 빼야 한다.
지금 자료를 파보는 방법
ERS-1000은 에뮬레이터로 대신할 수 있는 기계가 아니다. 대신 문서 쪽은 남아 있다.
- 소니 공식 헬프가이드는 ja, en, en-us 판이 각각 살아 있고 전체 PDF도 제공된다. 일본판 인쇄용 PDF는
https://helpguide.sony.net/aibo/ers1000/v1/ja/print.pdf, 미국판은en-us/print.pdf경로다. 지역판 사이에 기능 설명 차이가 있는지 대조할 때 유용하다. - 커뮤니티 위키인 AIBO WIKI의 ERS-1000 항목은 모델별 사양과 이력을 모아둔다. 단, 위키 기술은 2차 자료이므로 사양 수치는 소니 문서와 교차 확인하는 편이 안전하다.
- 구세대 ERS-110, ERS-7 시절의 매뉴얼과 개발 자료는 archive.org에 상당량 남아 있다. ERS-7의 R-CODE 문서처럼 지금은 소니 사이트에서 사라진 자료를 여기서 찾을 수 있다.
- 음성 명령 체계는 세대별로 크게 다르다. ERS-1000과 ERS-7의 명령어 대조는 aibo 음성 명령 정리에 따로 적었다.
남는 생각
ERS-110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배터리와 메모리스틱만 구하면 전원이 들어온다. 본체가 자족적이었기 때문이다. ERS-1000은 하드웨어가 훨씬 정교해졌는데 수집 가능성은 오히려 후퇴했다. 22축 관절과 두 개의 카메라가 멀쩡하더라도, 그 기계가 축적한 3년치 기억은 계약 해제일에 소니 서버에서 삭제된다.
레트로 컴퓨팅 관점에서 이 기종이 흥미로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ERS-1000은 "보존 가능한 기계"와 "보존 불가능한 서비스"의 경계에 놓인 첫 세대 반려 로봇이다. 20년 뒤 누군가 이 기계를 되살리려 할 때 남아 있는 것은 껍데기와 공식 문서뿐일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문서가 말하는 범위를 정확히 적어두는 작업 자체가 보존 활동에 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