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창고를 정리하다 옛 카세트 테이프 몇 개가 나왔다. C64용 게임 로더가 담긴 물건인데, 실기가 없어 결국 에뮬레이터로 확인했다. 1982년에 나온 기계를 2026년의 노트북에서 그대로 돌릴 수 있다는 점이 이 기종을 오래 기억하게 만드는 이유다.
Commodore 64는 1982년 8월 미국에서 595달러에 발매된 8비트 홈컴퓨터다. 그래픽을 담당하는 VIC-II와 사운드를 담당하는 SID 6581이라는 전용 칩을 얹어 당시 경쟁작보다 화면과 소리에서 앞섰고, 단일 기종 기준 역대 가장 많이 팔린 컴퓨터로 알려져 있다. 지금은 VICE 에뮬레이터로 실기 없이도 디스크 이미지와 프로그램을 그대로 실행할 수 있다.
어떤 기계인가
C64는 Commodore가 자체 반도체 자회사 MOS Technology의 칩을 그대로 활용해 만든 가정용 컴퓨터다. CPU와 그래픽, 사운드를 모두 자사 칩으로 채운 덕에 원가를 낮췄고, 그 가격 경쟁력으로 Apple II나 Atari 8비트 계열을 판매량에서 앞질렀다. 판매 대수는 출처에 따라 1250만에서 1700만 대 사이로 알려져 있다.
주요 사양
| 항목 | 내용 |
|---|---|
| 발표 | 1982년 1월 CES 공개, 같은 해 8월 발매 |
| 발매가 | 미국 595달러 |
| CPU | MOS 6510, 1.023MHz(NTSC) / 0.985MHz(PAL) |
| RAM | 64KB (BASIC 기동 시 38,911바이트 가용) |
| ROM | 20KB (BASIC, KERNAL, 문자 ROM) |
| 그래픽 | VIC-II, 320x200, 16색, 하드웨어 스프라이트 8개 |
| 사운드 | SID 6581, 3음 독립 채널 |
| 텍스트 | 40열 x 25행 |
| 단종 | 1994년 4월 |
VIC-II, 화면을 담당하는 칩
VIC-II는 Video Interface Chip의 2세대로, 화면 출력을 전담하는 그래픽 칩이다. 표준 해상도는 320x200에 16색 팔레트를 쓴다. 눈여겨볼 부분은 하드웨어 스프라이트다. 스프라이트는 CPU 부담 없이 화면 위를 독립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작은 그림 조각을 말하는데, VIC-II는 이걸 한 화면에 8개까지 지원한다. 캐릭터를 배경과 따로 굴릴 수 있으니 게임 개발에 유리했고, 이 점이 C64가 게임기로도 오래 사랑받은 이유다.
SID 6581, 소리를 담당하는 칩
SID(Sound Interface Device) 6581은 당시 홈컴퓨터 사운드 칩 중에서도 독보적이었다. 3개의 독립 오실레이터가 각각 삼각파, 톱니파, 펄스파, 노이즈 네 가지 파형을 낸다. 여기에 소리의 시작과 끝을 다듬는 ADSR 엔벨로프, 저역/대역/고역을 고르는 아날로그 필터, 링 변조와 오실레이터 동기까지 붙였다. 단순한 비프음 수준이던 경쟁기와 달리 실제 악기에 가까운 음색을 냈고, 그래서 지금도 SID 음악을 즐기는 팬층이 따로 있다.
초기 6581은 12V NMOS 공정이라 칩마다 필터 특성이 조금씩 달랐다. 후기 개정판 8580은 9V HMOS-II 공정으로 바뀌어 필터가 선형에 가깝고 잡음도 줄었다. 어느 쪽 소리가 더 좋은지는 취향이 갈린다.
KERNAL과 BASIC, 켜면 벌어지는 일
KERNAL은 C64의 저수준 운영체제 루틴 모음으로, 입출력과 초기화를 담당한다. 전원을 넣으면 6510 CPU가 리셋 벡터를 읽어 KERNAL의 초기화 루틴으로 진입한다. KERNAL은 메모리와 입출력 칩을 점검하고 화면을 세운 뒤, 20KB ROM에 들어 있는 BASIC V2.0 인터프리터로 제어를 넘긴다.
그 결과가 파란 화면에 뜨는 익숙한 안내 문구다.
**** COMMODORE 64 BASIC V2 **** 64K RAM SYSTEM 38911 BASIC BYTES FREE READY.
64KB 전체 중 BASIC 프로그램에 쓸 수 있는 공간이 38,911바이트로 표시되는 이유는 ROM과 시스템 영역이 나머지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LOAD와 RUN 명령으로 테이프나 디스크의 프로그램을 불러 실행한다.
수집가 관점
실기 자체는 유통량이 많았던 만큼 지금도 구하기 아주 어렵진 않다. 다만 오래된 개체는 전원부와 SID 칩이 약점이다. 순정 전원 어댑터가 노후화되면 과전압이 흘러 칩을 태우는 사례가 있어, 실기를 살릴 때는 전원부부터 손보는 편이 안전하다. SID는 단종 부품이라 죽으면 대체가 까다롭다.
VICE로 돌려보기
실기가 없어도 VICE(Versatile Commodore Emulator)로 대부분의 소프트웨어를 실행할 수 있다. C64용으로는 정확도를 높인 x64sc 바이너리를 쓰는 것을 권한다. 데비안/우분투 계열이면 패키지로 설치할 수 있다.
sudo apt install vice
디스크 이미지(d64)나 프로그램 파일(prg)은 인자로 넘기면 자동 실행된다.
# 디스크 이미지 자동 실행 x64sc game.d64 # PRG 파일을 RAM에 직접 올려 실행 x64sc -autostartprgmode 1 demo.prg
자동 실행 동작은 옵션으로 조정한다. -autostart-warp는 로딩 동안 warp 모드로 속도를 올리고, -basicload는 BASIC 시작 주소로 적재할지를 정한다. 자세한 옵션은 VICE 매뉴얼에서 확인할 수 있다.
돌려볼 소프트웨어가 없다면 archive.org의 소프트웨어 라이브러리에서 C64용 이미지를 받을 수 있고, C64 Wiki 같은 커뮤니티 위키에 기종과 게임 자료가 잘 정리되어 있다. 에뮬레이터로라도 파란 부팅 화면을 한번 띄워 보면 왜 이 기종이 명기로 불리는지 감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