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A를 정리하다 보면 팜(Palm)과 포켓PC 사이에서 잠깐 반짝했다 사라진 국산 기종이 하나 걸린다. 셀빅이다. 1990년대 말은 손바닥만 한 기계에 일정과 주소록을 넣고 다니는 것이 처음으로 현실이 된 시기였고, 그 시장에 국내 벤처가 자체 OS까지 얹어 뛰어들었다는 사실 자체가 지금 보면 꽤 대담하다.
셀빅(Cellvic)은 제이텔(jTel)이 1998년 말 내놓은 국산 PDA다. 팜파일럿을 벤치마크하되 운영체제를 직접 만들어 한글 입력과 필기인식을 앞세운 것이 핵심이다. 팜보다 한글을 다루기 편했고 값도 쌌지만, 자체 OS라는 선택이 응용프로그램 부족이라는 약점으로 돌아오면서 포켓PC 스마트폰 경쟁에 밀려 사라졌다.
제이텔과 셀빅의 등장 배경
제이텔은 1997년 11월 신동훈이 세운 회사다. 그는 삼성전자에 다니던 1992년 말 PDA 개발에 뛰어들었고, 이후 회사를 나와 제이텔을 설립했다. PDA(Personal Digital Assistant)는 일정, 주소록, 메모를 담아 들고 다니는 개인용 단말을 가리킨다.
제이텔은 1998년 12월 국내 기업 최초로 PDA를 출시했다고 알려져 있다. 당시 이 시장의 표준은 미국 팜(Palm)의 팜파일럿이었다. 제이텔은 팜파일럿을 벤치마크했지만 운영체제는 한국 환경에 맞춰 직접 만들었고, 이 셀빅OS는 국내에서 나온 첫 PDA용 OS로 평가된다.
첫 셀빅의 주요 사양
1999년 초 시판된 첫 셀빅의 사양은 다음과 같다. 리뷰 기준 시판 두 달 만에 초도물량 3천 대가 거의 소진될 만큼 반응이 좋았다.
| 항목 | 내용 |
|---|---|
| 제조 | 제이텔(jTel) |
| 출시 | 1998년 12월 발표, 1999년 초 시판 |
| CPU | 모토로라 드래곤볼(DragonBall) 계열 |
| 화면 | 160x160 흑백 액정 |
| OS | 셀빅OS(초기 버전 1.0.x) |
| 통신 | 적외선(IrDA), PC 싱크 |
| 크기 | 77 x 117 x 16.5mm |
| 무게 | 약 150g(배터리 포함) |
| 가격 | 소비자가 249,000원, 용산 실판매가 약 199,000원 |
드래곤볼은 모토로라가 만든 68k 계열 임베디드 CPU로, 같은 시기 팜파일럿에도 쓰였다. 화면 해상도 160x160도 팜과 같다. 팜을 기준선으로 삼았다는 점이 하드웨어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팜파일럿과 무엇이 달랐나
가장 큰 차이는 한글 입력이다. 팜파일럿은 그래피티(Graffiti)라는 약속된 획으로 알파벳을 입력했고 한글 지원은 부가적이었다. 셀빅은 스타일러스 펜으로 화면에 직접 한글을 써서 인식시키는 방식을 밀었다. 한글을 다루는 편의에서 팜보다 앞선다는 평가가 리뷰에 반복해서 나온다.
자체 OS라는 선택은 양날이었다. 한글 환경을 처음부터 국내 사정에 맞춰 짤 수 있었던 반면, 팜OS가 이미 쌓아 둔 방대한 응용프로그램 자산을 물려받지 못했다. 제이텔은 연 4회 앱 공모전을 열고 kcug.net 같은 사용자 커뮤니티를 지원하며 소프트웨어를 채우려 했지만, 응용프로그램 부족은 끝까지 셀빅의 약점으로 남았다.
초기 셀빅OS의 안정성도 문제였다. 오류가 나면 하드리셋되며 데이터가 날아가는 일이 잦았고, 이 부분은 OS 1.2 이후에야 눈에 띄게 나아졌다는 사용자 기록이 남아 있다.
셀빅i와 셀빅XG
제이텔은 첫 모델 이후 라인업을 넓혔다. 셀빅i는 무게 약 85g으로, 당시 기준 가장 작고 가벼운 PDA에 속했다. 종이 같은 터치스크린 질감과 선명한 액정이 사용기에서 호평을 받았다.
셀빅XG는 PDA에 휴대폰을 결합하려 한 모델이다. 확장 슬롯에 CDMA 모듈을 꽂아 최대 144Kbps 무선통신을 쓰는 구조로 소개됐다. 다만 2001년 11월 리뷰 시점에는 아직 상용화되지 않은 상태였고, 자주 리셋되거나 포인팅 오류가 나는 안정성 문제도 지적됐다. 주요 사양은 다음과 같이 전한다.
- CPU: 33MHz(기존 셀빅 시리즈보다 상향)
- 메모리: RAM 8MB, 플래시롬 4MB(OS 1.5와 휴대폰 관련 프로그램 탑재)
- 화면: 16계조 흑백 액정
- 연결: USB
플래시롬은 전원을 꺼도 내용이 남는 저장용 롬을 말한다. 셀빅XG가 OS와 통신 프로그램을 여기에 담았다는 점에서, 단순 일정관리기를 넘어 통신 단말로 가려던 방향을 읽을 수 있다.
수집가 관점에서 본 셀빅
셀빅은 실물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판매 규모 자체가 팜이나 포켓PC에 비할 바가 아니었고, 자체 OS 기종이라 해외 수집가 시장에도 거의 돌지 않는다. 국내 중고 거래에서 간간이 나오는 정도다.
이 시기 PDA를 손에 넣을 때 공통으로 확인할 부분이 있다. 흑백 액정의 백화나 세로 줄(스트릭), 스타일러스 펜과 크래들 같은 부속의 분실, 오래 방치된 기기의 배터리 누액이다. 셀빅은 여기에 더해 싱크 케이블과 전용 부속이 있어야 PC와 연결이 되므로, 본체만 있는 매물은 데이터 백업이나 활용이 까다롭다.
지금 다시 복기하는 방법
솔직히 말하면 셀빅은 지금 되살리기가 어려운 기종이다. 팜OS라면 POSE 같은 에뮬레이터로 그 감각을 재현할 수 있지만, 셀빅은 독자 OS라 널리 쓰이는 에뮬레이터가 사실상 없다. 실기가 없다면 남은 자료로 그 시절을 복기하는 쪽이 현실적이다.
한국어 위키와 커뮤니티 기록이 1차 자료 역할을 한다. 나무위키의 셀빅개발 항목, 기글하드웨어 위키의 Cellvic 문서, 개인 위키에 남은 셀빅 사용기가 사양과 사용 경험을 비교적 촘촘히 담고 있다. 당시 전자신문과 ZDNet 기사 원문은 가격, 라인업, 안정성 평가 같은 세부를 확인하는 데 유용하다. 사라진 페이지는 archive.org의 웨이백 머신으로 kcug.net이나 jtel.co.kr 옛 화면을 되짚어 볼 수 있다.
정리
셀빅은 표준이 아닌 길을 골랐던 국산 PDA다. 팜을 그대로 따라가는 대신 자체 OS와 한글 필기인식으로 국내 사용자에게 맞췄고, 그 선택이 강점이자 한계였다. 제이텔은 2003년 셀빅으로 사명을 바꾸고 이후 셀빅개발로 다시 바뀐 뒤 2004년 문을 닫았다. 짧게 끝났지만, 국산 PDA가 자체 운영체제를 들고 팜에 맞섰던 시도로 기억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