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국산 하드웨어를 뒤지다 보면 금성 FC-100 앞에서 한 번은 멈추게 된다. 애플 II 카피와 MSX 사이 어디쯤, 한국이 아직 반도체 조립국 소리를 듣던 시절에 나온 기계라서 그렇다. 이번 글은 실물 대신 남아 있는 ROM과 문서, 에뮬레이터를 근거로 이 기계를 다시 들여다본 기록이다.
금성 FC-100은 금성사(현 LG전자)가 1982년경 내놓은 8비트 가정용 컴퓨터다. 자체 규격이 아니라 일본 산요 PHC-25를 바탕에 두고 그래픽은 NEC PC-6001 계열 설계를 가져온 기종으로, MSX처럼 보이지만 MSX가 아니다. TV에 연결해 BASIC을 쓰고 후면 슬롯에 한글 롬팩을 꽂는 구성이 이 기계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FC-100은 MSX가 아니라 PC-6001 사촌이다
MSX 커뮤니티는 FC-100 같은 기종을 "Almost MSX"로 묶는다. BASIC 문법이 MSX-BASIC과 비슷하고 사운드용 PSG(Programmable Sound Generator, 소리를 만드는 전용 칩)가 같은 계열이지만, CPU 클럭과 화면 담당 칩이 달라서 MSX 소프트웨어가 그대로 돌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 혈통은 NEC PC-6001 호환에 가깝다.
화면을 그리는 칩이 대표적이다. FC-100은 모토로라 MC6847 호환인 M5C6847P-1을 VDG(Video Display Generator, 문자와 저해상 그래픽을 TV 신호로 뽑아주는 칩)로 쓴다. MSX가 텍사스인스트루먼트 TMS9918 계열 VDP를 쓴 것과 다른 선택이고, 이 차이 하나로 두 진영의 소프트웨어 호환이 끊긴다.
사양 정리
확인되는 사양을 표로 정리한다. 클럭 수치는 자료마다 다르게 적혀 있어 여기서는 확언하지 않고 계열만 표기한다.
| 항목 | 내용 |
|---|---|
| 제조사 | 금성사(GoldStar, 현 LG전자) |
| 발표 | 1982년경 (자료에 따라 1983년 표기) |
| 단종 | 1984년 6월 생산 중단 |
| CPU | NEC μPD780C-1 (Z80A 호환) |
| ROM | 24KB (GS-BASIC 인터프리터) + 4KB (문자 폰트) |
| RAM | 16KB |
| 그래픽(VDG) | M5C6847P-1 (모토로라 MC6847 호환) |
| 텍스트 모드 | 32문자 x 16행 |
| 그래픽 모드 | 64 x 48 (9색), 128 x 192 (4색), 256 x 192 (2색) |
| 저장 | 카세트테이프 인터페이스 (FSK 방식 600/1200 bps) |
| 영상 출력 | 컴포지트 및 RF (TV 연결) |
GS-BASIC은 롬에 상주하는 BASIC 인터프리터로, 전원을 켜면 바로 프롬프트가 뜨는 당시 홈컴퓨터의 표준 방식이다. 16KB RAM은 그래픽 페이지 설정에 따라 실제 사용 가능한 여유가 더 줄어든다.
TV 연결형 설계와 한글 롬팩
FC-100은 전용 모니터를 전제하지 않았다. 안방 TV에 RF나 컴포지트로 물리고, 프로그램은 카세트테이프로 읽고 쓴다. 플로피 없이 시작하는 이 구성 덕분에 진입 비용이 낮았고, 그만큼 교육용을 겨냥한 기계라는 성격이 분명하다.
한글 처리는 이 기계의 특징적인 부분이다. 키캡에는 한글이 측각(옆면 각인) 방식으로 새겨져 있고, 한글 표시는 본체가 아니라 후면 슬롯에 꽂는 한글 롬팩이 담당했다. 기본 상태에서 지원하지 않는 기능을 카트리지로 얹는 방식은 초기 8비트기에서 흔했지만, 한글이라는 문자 체계를 이렇게 외장으로 붙인 설계는 지금 봐도 재미있는 절충이다.
같은 시기 금성 라인업과 비교
FC 시리즈는 한 규격으로 밀고 나간 제품군이 아니라 서로 다른 원본을 참고한 기종들의 묶음이다. FC-100 이후의 형제들을 보면 이 회사가 당시 여러 진영에 양다리를 걸치고 있었다는 점이 드러난다.
- FC-30 (1983년 10월): 싱클레어 ZX81 계열의 저가형. 발매가 129,800원.
- FC-150 (1983년 12월): 소드(Sord) M5 기반의 상위 라인.
- FC-80 (1984년 4월): MSX 규격으로 넘어간 기종. 가장 오래, 가장 많이 팔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 FC-200: FC-80을 유럽 시장에 맞춰 PAL 출력으로 바꾼 수출 파생형.
FC-100 자체도 국내를 넘어 해외 수집가 카탈로그에 오르내린다. 유럽 레트로 데이터베이스(generation-msx 등)가 이 기종을 PC-6001 클론으로 별도 항목에 올려 두고 있어, 국산 8비트기 중에서는 바깥에서도 흔적을 남긴 편이다. 다만 정확한 수출 규모나 판매국은 출처마다 정리가 달라 단정하기 어렵다.
지금 FC-100을 만져보는 방법
실물은 상태 좋은 개체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 카세트 저장 방식 특성상 소프트웨어도 흩어져 있다. 대신 에뮬레이션 쪽은 길이 열려 있다. MAME가 fc100 드라이버로 이 기종을 지원하므로, 정식 배포판과 해당 ROM 세트만 있으면 GS-BASIC 프롬프트까지 재현된다.
$ mame -listxml fc100 $ mame fc100
환경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최근 배포판(0.279대)에서 Goldstar 제조사 목록에 FC-100이 올라 있다. 실행 결과나 필요한 ROM 파일명은 자신이 받은 MAME 버전 기준으로 -listxml 출력에서 확인하는 편이 안전하다.
자료를 더 파고 싶다면 세 곳이 출발점이 된다. 위키백과 "금성 패미콤" 항목이 국문 사양 정리로는 가장 정돈돼 있고, GitHub의 retro-1000/fc-100 저장소에 문서 스캔과 관련 자료가 모여 있다. archive.org에서 당시 광고 영상과 잡지 스캔을 검색하면 1983년 TV 광고 같은 1차 자료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