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삵
Hardware

Acorn A3000를 Arculator로 다시 켜기

동동교동삼거리·2026년 11월 6일·조회 0

요즘 스마트폰부터 노트북까지 거의 모든 기기에 ARM 코어가 들어간다. 그 ARM이 처음 데스크톱 컴퓨터의 메인 CPU로 들어간 기계가 에이콘 아르키메데스 계열이고, 그중 가장 대중적으로 팔린 모델이 A3000이다. 영국 학교 책상에 깔려 있던 올인원 컴퓨터라서, 영국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개발자에게는 BBC 마이크로 다음으로 익숙한 이름이다.

에이콘 아르키메데스 A3000
에이콘 아르키메데스 A3000. 사진: Binarysequence, CC BY-SA 3.0, 위키미디어 커먼즈

A3000은 1989년 5월에 나온 올인원 데스크톱으로, 8MHz ARM2를 얹고 RISC OS 2를 ROM에 담아 전원을 켜면 거의 즉시 부팅한다. 세계 최초의 ARM 기반 데스크톱 계열(아르키메데스)에 속하면서 가격을 낮춰 가정과 교육 시장을 노린 모델이다. 지금도 Arculator 같은 에뮬레이터로 당시 데스크톱을 그대로 띄워볼 수 있다.

키보드 안에 컴퓨터가 들어간 올인원

A3000 이전의 아르키메데스(A300, A400 시리즈)는 본체와 키보드가 분리된 두 덩어리 구성이었다. A3000은 이걸 키보드 일체형 한 덩어리로 바꿨다. 아미가 500이나 아타리 ST처럼 키보드 밑에 메인보드와 플로피 드라이브가 들어간 형태다. 실물을 보면 Master 128보다 약간 작은 크기라 책상에 올려두기 부담이 없다.

칩 구성은 아르키메데스 집안의 공통 설계를 따른다. CPU인 ARM2 외에 메모리를 관리하는 MEMC(메모리 컨트롤러, ROM/RAM 주소 배치와 가상메모리를 담당), 화면과 소리를 내보내는 VIDC(비디오 컨트롤러, 당시 흔히 쓰던 그래픽 전용칩 역할), 입출력을 모으는 IOC(I/O 컨트롤러) 세 개가 ARM을 둘러싼다. VIDC1은 최대 256색을 뿌리고 8채널 스테레오 사운드를 낸다.

전원 인가부터 ROM 커널과 모듈 초기화를 거쳐 데스크톱이 뜨기까지의 부팅 단계 흐름도
디스크 로딩 없이 ROM 코드가 바로 데스크톱까지 올라오는 과정을 단계로 풀었다

디스크가 아니라 ROM에서 올라오는 운영체제

A3000이 지금 봐도 재미있는 지점은 RISC OS가 디스크가 아니라 512KB ROM에 통째로 들어 있다는 점이다. 전원을 넣으면 ARM2가 리셋 벡터에서 ROM 코드를 실행하고, MEMC가 ROM과 RAM의 주소 배치를 잡은 뒤 운영체제가 올라온다. 하드디스크 탐색이나 OS 로딩을 기다릴 필요가 없어서 체감상 즉시 데스크톱이 뜬다.

RISC OS는 하나의 거대한 실행파일이 아니라 모듈(relocatable module, 기능별로 나뉜 독립 코드 덩어리)의 모음이다. 커널이 올라온 뒤 파일 시스템(FileCore, ADFS), 창 관리자인 Wimp(윈도우 매니저, 데스크톱 GUI를 그리는 모듈), 폰트 매니저 같은 모듈이 순서대로 초기화된다. 설정값은 메인보드의 CMOS RAM에 저장되고, *Configure 계열 명령으로 부팅 모드나 화면 해상도를 바꾼다.

RISC OS 데스크톱에서 F12를 누르면 화면 아래에 별표 명령(star command) 프롬프트가 열린다. 여기서 ROM에 올라온 모듈 목록을 직접 볼 수 있다.

*ROMModules
No. Position    Module Name
  1 ROM         UtilityModule
  2 ROM         FileSwitch
  3 ROM         ...
...

출력은 RISC OS 버전에 따라 다르지만, 커널과 파일 시스템, Wimp가 전부 ROM 자리에서 올라온다는 구조는 같다. 디스크의 !Boot 애플리케이션은 그 위에 추가 설정과 애플리케이션 경로를 얹는 역할을 한다.

주요 사양

항목내용
CPUARM2, 8MHz
메모리RAM 1MB(서드파티로 4MB, 8MB 확장 가능)
ROM512KB, RISC OS 2 수록
그래픽/사운드VIDC1, 최대 256색, 8채널 스테레오
확장내장 podule 슬롯 1개(외부 커넥터로 확장 카드 수용)
발표1989년 5월
가격649파운드 + VAT(교육용 529파운드)

여기서 podule은 아르키메데스 계열의 주변기기 확장 카드 규격이다. A3000은 두 덩어리 모델과 달리 내부 슬롯이 하나뿐이라, SCSI나 IDE 하드디스크, 네트워크(Econet) 같은 걸 붙이려면 이 한 자리를 두고 고민하게 된다.

아미가 500과 아타리 ST 사이에서

1989년의 올인원 가정용 컴퓨터 시장은 모토로라 68000을 쓰는 아미가 500과 아타리 ST가 장악하고 있었다. A3000은 혼자 RISC 계열 CPU인 ARM2로 맞섰다. 트랜지스터 수가 적고 단순한 설계인데도 정수 연산 체감 속도가 68000 기반 경쟁작을 앞섰다는 평이 당시부터 있었다. ARM이 저전력 고효율로 유명해지는 뿌리가 이 아키텍처다.

대신 게임 생태계와 가격은 아미가 쪽이 유리했다. A3000은 교육 시장과 영국 내수에 치우쳤고, 소프트웨어 다양성에서 밀렸다. 지금 돌아보면 하드웨어는 앞섰지만 시장을 넓히지 못한 전형적인 사례다.

수집가 입장에서

A3000은 영국에서 많이 팔린 만큼 중고 매물 자체는 아주 희귀하지는 않다. 다만 한국에서는 유통된 물량이 거의 없어 실물을 구하려면 영국 이베이나 레트로 커뮤니티를 거쳐 수입해야 한다. 전압도 240V 기준이라 변압기가 필요하다.

흔한 고장 부위는 세월 지난 영국제 기계의 공통 문제인 전원부 전해 커패시터다. 누액으로 기판을 부식시키는 경우가 있어 입수하면 전원부 캡 교체를 먼저 점검한다. 설정을 유지하는 CMOS 백업 배터리도 누액으로 보드를 상하게 하는 단골이라, 켜기 전에 배터리 상태부터 확인하는 편이 안전하다.

Arculator와 RPCEmu의 대상 기종, 기본 구성, ROM 준비 방식, 용도를 비교한 표
ARM2 시절 A3000을 보려면 Arculator, 설정 없이 RISC OS를 만져보려면 RPCEmu로 나뉜다

Arculator로 A3000 그대로 띄우기

A3000을 소프트웨어로 되살리려면 Arculator가 가장 가깝다. Arculator는 A305부터 A5000까지 아르키메데스 계열을 모델링하며, 기본 설정이 ARM2에 MEMC1a, VIDC, IOC를 얹은 A3000급 구성이다. 실제 하드웨어의 칩 구성을 그대로 흉내 내므로 부팅 동작도 실기에 가깝다.

Arculator를 쓰려면 RISC OS ROM 이미지가 필요하다. RISC OS 2나 3.x ROM은 저작권이 남아 있으니 합법적으로 구한 이미지를 쓴다. ROM 파일을 지정하고 머신을 A3000으로 고르면 플로피와 하드디스크 이미지를 붙여 당시 데스크톱을 띄울 수 있다. 네트워크가 필요하면 최신 버전에 들어온 이더넷 podule 에뮬레이션을 설정한다.

RPCEmu는 성격이 조금 다르다. A3000이 아니라 후계기인 Risc PC와 A7000을 에뮬레이트하고, 현행 오픈소스 버전인 RISC OS 5를 ROM과 기본 하드디스크 이미지까지 묶어 배포한다. ROM 이미지를 따로 구하기 번거롭고 일단 RISC OS 데스크톱을 만져보는 게 목적이라면 RPCEmu가 바로 켜진다. ARM2 시절의 A3000 그 자체를 보고 싶으면 Arculator, 설정 없이 RISC OS를 체험하고 싶으면 RPCEmu로 갈라서 쓰면 된다.

아르키메데스 소프트웨어와 디스크 이미지, 매뉴얼 스캔은 archive.org에 상당량 올라와 있고, 하드웨어 세부 사양과 podule 정보는 Arc Wiki(arcwiki.org.uk)에 잘 정리돼 있다. ROM 이미지 입수 경로와 각 머신 설정 차이는 이 두 곳을 먼저 뒤지면 대부분 답이 나온다.

자주 묻는 질문

A3000이 세계 최초의 ARM 데스크톱인가.

A3000이 속한 에이콘 아르키메데스 계열이 ARM을 메인 CPU로 쓴 최초의 데스크톱 컴퓨터군이다. 아르키메데스 첫 모델은 1987년에 나왔고, A3000은 1989년에 나온 올인원 보급형이다.

A3000은 Arthur를 쓰나 RISC OS를 쓰나.

A3000은 Arthur를 대체한 RISC OS 2를 512KB ROM에 담아 출하됐다. 초기 아르키메데스가 쓰던 Arthur OS의 후속이 RISC OS다.

RISC OS는 왜 부팅이 빠른가.

운영체제 전체가 ROM에 들어 있어서다. 전원을 켜면 ARM2가 ROM 코드를 바로 실행하고 모듈이 순서대로 올라오므로, 디스크에서 OS를 읽어들이는 대기 시간이 없다.

Arculator와 RPCEmu 중 뭘 써야 하나.

ARM2 시절의 A3000 자체를 재현하려면 Arculator가 맞다. 설정 없이 바로 RISC OS를 만져보려면 RISC OS 5를 포함해 배포하는 RPCEmu가 편하지만, 이쪽은 A3000이 아니라 후계기 Risc PC와 A7000을 에뮬레이트한다.

A3000 메모리는 얼마까지 늘릴 수 있나.

기본 1MB로 출하됐고, 서드파티 확장으로 4MB나 8MB까지 늘린 사례가 알려져 있다. 하드디스크는 ST506, SCSI, IDE 방식의 확장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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